#사랑을찾아돌아오다 #기욤뮈소 #프랑스소설 #미스터리소설
에단은 마구 소리라도 질러 카메라맨을 쫓아내고 싶었지만 괜한 시빗거리를 만들게 될까봐 단념했다. 지금 당장 그가 바라는 건 아무도 없는 공간에 혼자 있는 것이었다. 커튼을 내리고 죽도록 퍼마시고 싶었다. 보드카로 뇌를 씻어내고 환각상태에 빠져들어 일시적이나마 포근한 느낌, 보다 편안한 느낌을 만끽하고 싶었다. 셀린이 여전히 그를 사랑해주는 곳, 골판지 상자 속에서 한뎃잠을 자는 사람들이 없는 곳, 폭탄을 장착한 차량이 거리에서 폭발하지 않는 곳, 만년설의 정상이 시시각각 녹아내리지 않는 곳, ‘캔서Cancer’가 암이 아니라 그저 별자리 중 하나인 ‘게자리’인 그런 세상으로 가고 싶었다.
--- 68
“우리가 살고 잇는 지구에서 하루에 약 삼천 명이 자살로 죽어갑니다. 그러니까 삼십 초마다 한 사람씩 자살하는 셈입니다.”
30초마다 한 사람씩 자살하다니? 자, 한번 세어보자.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한 사람이 자살하다.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또 한 사람이 자살하다.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또 한 사람이 자살하다.
정말 놀라운 속도 아냐?
--- 76~77
“운명의 완강한 흐름에 맞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해진 죽음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듯입니다.”
커티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에단은 너무나 기가 막혀 뭐라 반박하는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눈을 들어 택시의 백미러에 걸어놓은 묵주를 쳐다보았다. 은과 자개로 된 묵주가 앞 유리를 배경으로 백미러에 매달려 있었다.
“운명에 맞서 싸우려드는 건 헛된 망상일 뿐이죠.”
--- 81
“당신은 정말로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운명에 의해 정해져 있다고 믿습니까?”
에단이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물었다.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시간이란 책의 낱장과 흡사하니까요. 우리가 육십육 쪽을 읽고 있을 때, 육십칠 쪽과 육십팔 쪽은 이미 쓰여 있습니다.”
“그럼 우연이 맡은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죠?”
커티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내 생각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우연이 바로……신이죠. 그래요, 우연이란 잠행하는 신입니다.”
“그럼 인간의 자유의지는 뭡니까?”
“인간이 자유의지라고 믿는 건 허상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 허상에 중독되어 운명이 결정한 사태에 맞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착각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도 말이죠.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까? 운명의 신이 미소를 지어 보이는 사람이든, 악착같이 괴롭히는 사람이든 결국 똑같다는 생각 말입니다.”
--- 82~83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산다는 건 곧 위험을 무릅쓰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란다.”
“위험을 무릅쓴다고요?”
제시가 물었다.
(중략)
“실패와 고통, 손실을 무릅쓰는 위험 말이다.”
제시는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잠깐 동안 생각하는 듯했다.
에단은 아이에게 더욱 설득력 있게 보이고 싶어 하며 말을 이었다.
“행복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통을 경험해봐야 하는 거란다. 인간은 불행에 저항하는 노력을 통해 행복을 쟁취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쉽죠.”
아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한마디 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분명한 사실이란다.”
“그럼 아저씨는요? 아저씨는 지금 행복해요?”
---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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